<역사의 오늘> 베트남 파병~명암이 엇갈린 하얀 전쟁 (1월 26일)

역사의 오늘을 들여다본다.1965년 1월 26일 베트남 전쟁 전투 병력 파견 방안의 국회에서 통과된 베트남 파병은 한국 현대사에 큰 파문을 남긴 동시에 역사적 평가의 희비가 엇갈린 사건이다.1965년에는 내가 중학생 때였는데, 그때의 기억이 어렴풋하게 떠오른다.당시 내가 다니던 학교는 해운대에 있었지만, 전교생이 단체로 버스를 타고 부산항 연안 부두까지 가면서 베트남으로 향하는 맹호 부대 용사들에게 손 태극기를 흔들며 보냈다.그때 들은 응원 군가의 가사 중 곡과 함께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부분은 “멩호 부대 용사들이여~”이다.응원 군가만 아니라”미스 김”도 건강합니다.”미 소매치기도 안~뇨은”이라는 가사의 노래도 나오고 있었는데, 포효했다. 선생님 한분이 노래를 함께 부르며 미 소매치기도 안~뇨은 때 저를 가르키며 손을 흔들었다 기억까지…···지금 생각하면 남의 나라 전쟁에 우리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고 참가 하는 엄중한 장면이었는데 맹호 부대 용사들이 그냥 멋지게 보였다 그때 우리는 아주 분별이 없었던 것이다.베트남 전쟁 제일차 인도차이나 전쟁(1946년~1954년)이후 분단된 베트남에서 1955년 11월 하루에서 1975년 4월 30일까지 일어난 전쟁이다.이 전쟁은 분단된 남북 베트남 간의 내전인 동시에 냉전 시대에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이 대립한 대리전 양상을 띠면서 1964년 8월부터 1973년 3월까지 미국 등 외국 군대가 개입하는 캄보디아·라오스에 전선이 확대되고 국제 경기로 치러졌다.베트남 전쟁은 남 베트남 민족 해방 전선의 게릴라전과 북 베트남 정규군인 베트남 인민군의 정규전이 동시에 전개됐다.1964년 8월 미국이 통킹 만 사건을 빌미로 개입함으로써 국제전으로 확대하고 1965년에 미국, 대한민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이 지상군을 파병했다.이후 8년의 전쟁 끝에 1973년 1월에 프랑스·파리의 평화 협정이 체결되어 그 해 3월 말까지 미군이 모두 철수하고 1975년 4월 30일에 사이공 함락으로 북 베트남이 무력 통일을 이루는 1976년에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선포됐다.이 전쟁은 압도적인 군사력의 미군이 폭격과 공습, 수색 섬멸 작전 과정에서 네이팜탄 등 대량 살상 무기를 투하하는 고엽제 등의 화학 무기를 사용하여 무차별적으로 민간인을 희생함으로써 미국 내 반전 운동을 촉발했을 뿐 아니라 미국의 국제적 군사 개입에 대한 당위성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백과 참고

베트남전 한국군 파병 베트남 전쟁 당시 박·정희 정권은 반공 주의를 내걸고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베트남에 파병했다.통킹 만 사건 이후 미국은 대한민국에 후방 지원 부대 파병을 요청하면서 대한민국은 제6사단 사령부에서<한국 군사 지원단>본부인 비둘기 부대를 창설하는 1965년 3월 10일 인천항을 통해서 파병했다.비둘기 부대는 사이공 동북쪽에 있는 지안에 주둔하면서 건설 지원 임무를 수행했다.그 뒤 추가 병력을 파견하면서(파병 상한선 5만명 한국군의 현대화 지원, 북한의 침공 때 미국이 즉시 출병하도록 한미 방위 조약 개정, 군수품 공급 등 한국의 남 베트남 시장 진출 보장)등의 협상을 벌였다.청룡 부대가 1965년 10월 9일 캠 라인에 상륙하면서 11월 하루는 맹호 부대가 크이뇨은에 상륙한 파병 군인의 의무 기간은 1년에서 파병 병력의 누계는 32만명에 달했다.파리 평화 협정에서 미군이 철수하고 대한민국도 철수했다.베트남 전쟁 기간 중, 한국군 전사자는 약 5천 여명에서 1만 1천 여명이 부상했다.한국군은 전쟁 중 남 베트남 민족 해방 전선의 전투원 4만 1천명을 사살했다고.대한민국은 파병 대가로 경제 발전을 이루고 GNP는 파병을 전후해서 5배 정도 성장했다.백과 참고

출처:다음의 백과 1970년대에 유행한 가수 김·츄쟈의 “베트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라는 노래가 떠오른다.”베트남에서 돌아온 시커먼 김 상사.나의 마음에 들었어요~’로 시작되는 빠른 템포의 노래이며, 베트남에서 금의 이중한 그를 기리는 긍정적인 노래였다.안·죠은효의 소설” 하얀 전쟁”을 읽기 전까지 베트남 파병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은 맹호 부대 장병들의 늠름한 모습과 “베트남에서 돌아온 김 상사”노래뿐이었다.” 하얀 전쟁”은 코리아 헤럴드 기자로 베트남 전쟁을 경험한 안·죠은효 작가가 당시 적어 놓은 칼럼과 일기를 모아 쓴 영문 장편 소설”White Badge”를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소설이다.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동명의 영화도 나왔다.베트남 파병에서 돌아온 주인공이 전쟁에 대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에 의해서 체험하는 사회 부적응과 갈등을 통해서 전쟁을 경험한 사람들 전쟁은 끝난 뒤에도 영원한 상처로 남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뿐만 아니라 한때 사회적 이슈가 된 라이 따이한(한국 남성과 베트남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2세)도 베트남 파병에 의해서 생긴 문제인 베트남 파병의 후유증은 다양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베트남 파병으로 획기적인 경제 성장을 이뤘다고 해도 파병 용사의 피와 땀으로 거름에 이룬 성과라는 점에서 명암이 엇갈린다.베트남 파병 결과에 대한 실제 통계로 전사자가 약 5000명, 부상자가 100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지면서 한때 고엽제 피해에 대한 문제도 재조명된 것이 있고 젊은 시절 전쟁의 참상에 의해서 정신적 트라우마를 경험하는 사람들의 고통까지 고려하면 베트남 파병 이후 경제적 성장이라는 긍정적 측면만 확대 홍보된 것은 아닌지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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